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동남아시아 근대사2

동남아시아 역사 2편. 톤부리 시대와 라타나코신 왕조 타이는 1767년 미얀마의 싱뷰싱 왕의 공격으로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한 후 화교 탁신에 의해 톤부리 시대가 열렸으나 15년 만에 멸망하고, 차크리에 의해 라타나코신 왕조가 세워지면서 유럽 열강의 끊임없는 통상조약 요구를 받게 되었다. 라마 2세 말년인 1822년 영령 인도에서 크로퍼드를 파견하여 통상체결을 요구하였으나 포올콘 사건 이래 서양 제국에 대한 두려움에서 거절되었다. 이러한 통상의 요구는 거절하면서도 역대 왕들의 영토확장정책은 결실을 맺어 일부 라오스지역, 캄보디아의 시엠리아프, 바탐방, 말레이시아의 케다, 펄릿, 케란탄, 프랑가누 지방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버니 조약 그러나 타이는 라마 3세 때인 1826년 영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버니 조약을 체결하고, 1833.. 2023. 1. 22.
동남아시아 역사 3편.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래플즈 말레이에도 일찍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세력이 진출하였으나 겨국 영국한테 밀렸다. 영국은 프랑스혁명 때 네덜란드가 점령 당한 틈을 이용하여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손에 넣고, 말레이반도는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 1819년 래플즈는 싱가포르에 영국의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824년에는 영국-네덜란드 조약에 의거하여 말라카와 싱가포르가 영국에 귀속됨으로써 1826년 말라카, 싱가포르, 페낭을 합하여 해협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 초 타이는 이미 말레이 북부 4개 속주를 지배하기에 이르렀으나 영국의 진출로 페라크와 셀랑고르에의 진출은 포기하였다.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1867년 영국 식민성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가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주요 무역항이 되었다. 영국은 1895년 해협.. 2022. 10.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