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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역사이야기9

조선시대에도 일요일이 있었을까? :: 조선시대 휴무일 체계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처럼 휴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도 현재 우리의 일요일처럼 휴무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본문을 확인해 주세요. 조선시대에 휴무일이 있었을까? 오늘날에는 주 7일로 정하고 하루는 휴무일로 쉬는 근로체계를 가지고 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이런 주 7일 근로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일요일처럼 모두 한꺼번에 다 쉬는 휴무일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휴무일 체계 조선시대에는 현재 우리의 근로체계처럼 모두가 다 함께 쉬는 휴무일 개념이 아니라 각 기관의 내규에 따라 정해지는 비번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각 기관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휴식을 취하거나 사적인 용무를 볼 시간을 주었는데요. 비번일의 기간은 10~15일 단위였다고 합니다. 물.. 2023. 11. 8.
인류는 언제부터 삼시세끼를 챙겨먹게 되었을까?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류는 언제부터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루 3끼를 먹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점심식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원래 인류는 식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과 조선은 점심식사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유럽은 16세기, 그리고 일본은 무려 20세기에 점심식사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점심이 없었던 시절에는 무엇을 먹었을까? 점심식사라는 끼니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주로 농경사회였으므로 농부들이 일하다가 중간에 먹는 새참의 개념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식사라기보다는 일하다가 중간에 먹는 간식의 개념이었던 것이죠. 옛날 우리나라의 식사개.. 2023. 11. 7.
G7 정상회의 뜻과 역할 및 역사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선 G7 정상회의 뜻과 역할 및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주제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본문글을 참조하시면 빠르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G7 정상회의란? G7정상회의를 알려면 먼저 G7부터 알아야 합니다. G7은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이렇게 7개의 선진국을 Group of 7이라 하여 줄임말로 G7이라 칭합니다. 이들 국가들의 대통령이나 총리와 같은 정상들이 1년에 한번씩 다 같이 회동하여 세계경제의 전망과 예측, 각국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논의를 하는 것을 G7 정상회의라고 부릅니다. G7 정상회의의 시작은? G7정상회담이 시작된 것은 1975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당시 석유위기가 터지고 이후, 세계경제에 .. 2023. 5. 25.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실제인성은 어땠을까?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실제 인성은 어땠을지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 이성계의 인성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살던 나라를 망하게 하고 새나라를 건립하여 왕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뒤집은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성계란 사람의 인성은 과연 어땠을까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인성을 짐작하기 위해선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어린 시절 이성계는 일찍이 친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인 정빈김 씨와 이복형제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태조실록을 참조하면 그는 정빈김 씨가 친어머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공손하며 항상 무릎 꿇은 자세로 정빈 김 씨를 대했다고 나와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성계의 새어머니인 정빈 김 씨는.. 2023. 4. 30.
현대 축구의 역사, 현대 축구 최초의 기록들 축구의 인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닐까 싶습니다. 축구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우리가 아는 방식의 현대적 축구는 영국에서 19세기에 출발했습니다. FA의 설립 축구경기는 처음에는 경기규칙도 그렇고 공크기도 표준으로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마다 매우 규칙들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의 토대가 된 규칙들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863년에는 영국에서 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설립이 되었죠. 이 영국 축구협회를 FA라고 부르는데요. FA는 최초로 축구의 표준화된 규칙들을 제정합니다. 최초의 공식 축구경기 영국에서부터 축구는 굉장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857년에는 셰필드 축구클럽이 최초의 축구클럽으로 창설되었죠. 1863년.. 2023. 3. 15.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와 죽음 1. 출생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에 부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야마구치 현의 가난한 농민인 하야시 주조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이후 아버지가 이토 집안의 양자로 가게 되는데요. 양자가 되어서 무사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도 하야시에서 이토로 바꾸게 됩니다. 처음에는 리스케, 슈스케라는 이름으로 불렷으며 야마구치 현에 있는 쇼카 손 주쿠에 들어가서 요시다 쇼잉의 제자가 됩니다. 2. 영국을 유학하고 충격에 빠지다 이토 히로부미는 다카스기 신사쿠등과 함께 존왕양이 운동 즉, 쇄국정책과 중앙집권화를 주장한 운동으로 천황을 공경하고 외국인을 쫓아내자고 주장하는데요. 1863년에는 번의 명령으로 이노우에 카오루 등과 함께 영국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산업혁명 이후 계속 발전.. 2022. 11. 3.
'슈룹'에 나오는 세자시강원에 대해서 요즘 김혜수가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한다 하여 화제가 된 드라마 '슈룹'을 보시면 세자가 신하들 앞에서 멋지게 사서를 암기하고 신하가 성적을 평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렇게 세자가 신하들에게 교육을 받는 기관이 바로 세자시강원이라는 곳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시대 세자시강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세자교육 관청은 신라시대부터 세자시강원이란 조선시대에 왕세자들의 교육을 책임지던 관청이었는데요. 세자를 교육시키기 위한 관청은 신라시대 때부터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동궁아 관을 두어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전통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의 세자시강원으로 이어진 것인데요. 세자시강원은 태조 1년인 1392년에 세자 관속이라는 이름으로 세자를 위한 .. 2022. 10. 21.
조선시대도 위조화폐가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시대에도 위조화폐는 당연히 있었고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법정화폐 대신에 소금이나 쌀, 가축 등을 이용하여 물물교환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동전이 만들어지고 활발하게 유통이 되면서 위조화폐 문제는 꾸준히 발생했는데요. 17세기 말에 이르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당시 화폐를 위조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구리로 동전을 위조하기 위해, 놋그릇 절도가 횡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위폐를 보면, 함석을 사용하지 않고 구리와 납만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주조된 동전보다 가벼웠는데, 일반 백성이 이를 알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심각함을 느낀 조선 숙종은 화폐를 위조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하는데요. 동전을 불법 주조한 장인.. 2022. 10. 11.
조선시대 식사량은 왜그렇게 많았을까 외국인들도 놀란 한민족의 대식 습관 현대 사람들은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밥을 조금씩 먹는 식습관이 익숙해졌지만, 우리나라는 할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밥을 고봉밥으로 많이 먹던 나라였습니다. 당대 기록을 살펴봐도 조선시대 식문화에 대해 외국인들 기록에서는 '조선인은 식사량이 많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임진난 당시 이여송은 조선인들의 고봉밥을 보고 놀라서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먹으니 국가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라고 물었으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봐도 무열왕이 하루에 먹는 양은 하루에 쌀 3말과 꿩 9마리를 잡수셨다고 나와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식사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옛날에는 왜 그렇게 밥을 많이 먹었을까요? 대식 기록은 재력과시의 한 표현 무열왕이 하루에 쌀 3말과 꿩..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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