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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유고슬라비아 전쟁 10회. 보스니아 전쟁과 인종청소

by 니루루 2022. 9. 20.

이번 포스팅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리즈 10 회편으로 보스니아 전쟁과 인종청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학살과 약탈

 

유고연방군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포격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금 목표를 바꿔서 크로아티아 내 유고연방군기지를 크로아티아군이 포위한 것을 풀 것을 요구하면서 부코바르를 총공격합니다. 부코바르에는 압도적인 유고연방군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투지만은 주민의 희생을 피하려면 주민을 대피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대통령인 프라뇨 투지만은 매우 강경했고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주민의 희생을 여론전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때문에 세르비아계 민병대를 중심으로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세르비아 민병대의 잔혹한 학살극

 

어떤 식으로 학살이 시작되었을까요? 유고연방군이 부코바르를 향해 포화가 시작되고 주민들은 부코바르 병원 지하로 대피합니다. 400명 정도 대피해있었는데, 그래도 민간인이니까 크로아티아 점령지역으로 이송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세르비아 민병대는 이들 중 성인남자 약 200명을 끌고 가 학살을 자행합니다.

 

1년 후, 1992년 10월 부코바르 인근 오브차라 공장에서 집단무덤이 발견되면서 이 끔찍한 비극이 언론에 알려지게 됩니다. 한편, 부코바르를 함락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유고연방군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근처 지역까지 진군을 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 땅에는 약 10% 정도의 세르비아계 거주지역이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세르비아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계속되는 민간인 학살사건에 국제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여 UN이 드디어 개입하게 됩니다. 

 

제네바 협약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사이러스 밴스는 UN특사로 파견되어서 각 공화국 과 유고연방의 대표가 만나 1991년 11월 23일 제네바 협약을 체결합니다. 드디어 휴전이 합의된 것이지요. 이때 안보리의 결의로 유엔 보호군이 1,4000명이 파견됩니다. 당시 평화보호군은 실제로 전투를 하기보다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파견된 병사들이었기에 전투준비도 안되었고 전투의 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고지역은 생사를 건 민족 간 전투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평화보호군은 군대라고 볼 수도 없는 상태였고 따라서 당시 휴전상태는 매우 불안했다고 합니다.

 

유고연방의 해체, 신유고연방의 결성

 

세르비아의 시선이 크로아티아에 집중한 사이에 1991년 9월 8일에 마케도니아가 독립선언을 합니다. 보스니아 전쟁덕분에 시선을 돌린 사이, 마케도니아는 별다른 충돌 없이 독립하여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어서 1992년 3월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유고연방은 완전히 와해됩니다. 그리고 1992년 4월에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신유고연방이 결성됩니다. 

 

전쟁을 멈추려면 유고지역의 민족별 분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보스니아의 경우, 민족간 분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구가 뒤섞인 것뿐 아니라, 종교도 실타래처럼 엉킨 상황이었기 때문이지요. 반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경우는 크로아티아가 가톨릭을 믿고, 세르비아가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고 있어서 분리하기가 쉬웠는데, 보스니아 같은 경우는 민족구성이 워낙 복잡했습니다. 

 

 

보스니아 인구가 약 435만 명이었는데, 이중에서 40%가 무슬림, 세르비아 정교회가 37%, 가톨릭이 21%을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국민투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한다한들 결과에 대한 승복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만 참여한 국민투표는 실시되어서 1992년 3월, 보스니아 무슬림을 중심으로 정부가 구성되고 독립을 선포하게 됩니다.

 

보스니아 무슬림의 독립소식에 유고연방 내 가장 큰 세력이었던 세르비아가 강력한 반발을 합니다.  보스니아 독립국 내부에 있는 세르비아계 사람들 또한 우리가 이슬람 정부 밑에 있어야 되냐고 반발하게 됩니다. 세르비아인들은 과거 코소보전투에서 이슬람국가인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당했던 역사를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더욱 반발하게 된 것이죠.

 

또한 보스니아에 무슬림정부가 구성되었지만 보스니아 국가의 군사력은 이미 세르비아계가 장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를 격파하기 위해 민병대를 동원합니다. 이 민병대중심의 세르비아군은 순식간의 무슬림 중심의 보스니아군을 격파합니다. 순식간에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영토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 되고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까지 위협하기에 이릅니다.

 

보스니아 무슬림계의 고립

 

이러한 배경에는 세계열강의 개입이 있었는데 먼저 러시아가 은밀하게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의 경우 유럽공동체나 서방언론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보스니아 무슬림계는 지원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 정세가 무슬림계에게 매우 불운한 상황이었습니다. 보스니아 전쟁이 걸프전쟁 직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취약한 상황에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무슬림을 향해 극심한 학살행위를 벌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1994년 쯤되서야 중동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이란에서 무기를 지원해 주고, 혁명 수비대를 파견해주미나 너무 늦었지요.

 

인종청소의 본격적인 시행

 

세르비아계의 목표는 끔찍하고 명확했습니다. 첫번째 목표는 보스니아 무슬림의 전멸, 두 번째 목표는 크로아티아계 사람들의 전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종청소가 목표였지요. 이처럼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보스니아 무슬림 거주지역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 방식은 끔찍했습니다.

 

모든 마을의 도로를 차단한 뒤에 세르비아계를 대피시킵니다.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만 남은 마을에 무차별로 포격합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숨게 되고, 그때 민병대를 투입합니다.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 중에서 가장 유명한 3대 민병대가 있었습니다. 아르칸의 타이거즈, 보이슬라브 셰셸의 체트니크계열 크닌 닌자들, 미르코 요비치의 화이트이글스가 그것인데, 이 3대 민병대의 대장들은 모두 세르비아 정당을 이끄는 정치인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세르비아 비밀경찰들과 연계되어 비세르비아계 사람들이 더이상 보스니아 지역에 살지 못하도록 정치적, 사회적인 차별과 압박을 했습니다. 비세르비아계 회사를 테러하기도 하고, 비세르비아계는 자동차 여행이 불가능했으며 심지어 개인 전화도 금지시킵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은 성범죄를 당했으며, 아이들도 무자비하게 학살당했습니다. 엄청난 학살사건이 수없이 벌어지게 되고, 이런 끔찍한 실태가 국제여론에 알려지게 되면서 국제여론이 들끓게 됩니다. 

 

 

나토의 개입

 

이 끔찍한 전쟁에 개입을 거부하던 나토군도 1995년에 마침내 군사작전을 결심하고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대한 폭격을 개시합니다. 이를 딜리버레이트 포스작전이라 합니다. 이 작전은 너무나 수많은 희생 뒤에 실행된 것입니다. 너무나 늦은 대처였지요. 결국 그해 11월에 데이턴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보스니아전쟁은 종결됩니다.

 

물론 보스니아전쟁은 세르비아계가 일방적으로 보스니아 무슬림을 학살하기만 한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보스니아 전쟁은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계가 엉켜서 3파전 양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인종청소하는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아무런 윤리기준,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 사라진 잔혹한 학살극이었습니다.

 

여기에 개입한 서방은 그 복잡한 전쟁 이해관계의 셈법때문에 제대로 학살을 막지도 못했지요. 더군다나 휴전협정을 맺을 때마다 결렬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는데, 협정을 지도자가 아닌 민병대 수장들이 체결합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요. 아무런 규칙이나 통제가 없는 민병대 수장의 약속은 전혀 실효적이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다시 휴전이 깨지고 다시 휴전을 맺고를 계속 반복하게 되었던 전쟁이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렇게 끔찍한 전쟁이 불과 3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현재도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당시 학살을 자행했던 세력들의 대부분은 전범으로 처벌받지도 않고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유고지역의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문제가 일어났을 때 과연 국제사회가 예전의 우를 다시 범하지 않고 제대로 중재할 수 있을지 이 역사를 통해 제대로 살펴보고 통찰하여 배워야 할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1편.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대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 1편.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대해서

1. 유고연방은 어떤 나라인가? 1차 대전에 관한 책을 보면 보통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유고 슬라비아를 간략하게 이해하려면 234567 숫자로 이해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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