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사

유고슬라비아 전쟁 7회.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

by 니루루 2022. 9. 6.

이번 포스팅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리즈 7편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스탈린 체제의 이탈

 

스탈린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가장 이탈하기 쉬운 국가들은 민족주의가 강한 국가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스탈린은 신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추앙받는 존재였지요. 때문에 민족주의가 강한 국가들로서는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고는 있지만 본인들이 주도를 하지 못하고 스탈린의 간섭을 받는 것에 불만이 컸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서서히 스탈린에게 복종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노선으로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국가들이 50년대 중반 비동맹주의를 채택한 제3세계로 빠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국가로 유고연방과 중국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제3세계에서 지도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높아만 가는 티토의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1970년대 2차례에 걸쳐 일어난 오일쇼크였습니다. 하필이면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심화되는 와중에 티토가 사망하게 됩니다.

 

2. 티토의 사망 이후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고연방의 외채문제가 더욱 심각해져  실업률은 폭증하고 인플레이션은 심각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민심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거기에다가 유고 공화국들 간의 사이도 악화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경제력의 차이 심화 때문이었습니다. 오스트라와 헝가리 제국 치하에 있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은 풍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에 그 남쪽지역은 산악지역이 험해서 공업 발달이 쉽지 않았고 교육 수준도 낮았습니다. 이미 티 토정권 말기 때 새 헌법이 제정되면서 각 공화국의 자치권이 커진 상황이었고 이제 더 이상 유고연방의 통합체제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다가 해묵은 종교적인 갈등이 다시 심화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봄, 그리고 티토 사후 코소보에서의 학생 폭동 등을 거치면서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 사이에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또다시 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분열이 이미 시작된 것이지요.

 

 

 

 

 

유고슬라비아 전쟁 8편. 유고연방과 슬로베니아의 전쟁

1. 티토의 사망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유고연방 티토가 사망한 시점은 소련과 동유럽 전체가 흔들리며 탈냉전의 조짐이 나타나던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는 공산주의는 물론 자본주의도 흔들리는

3h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