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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유고슬라비아 전쟁 6회.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등장

by 니루루 2022. 9. 6.

티토

 

1. 처칠과 스탈린과 티토의 동상이몽

스탈린과 처칠은 전쟁이 끝나고 나면 유고슬라비아의 영토를 5:5로 분할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는 9:1 루마니아의 경우는 1:9 유고슬라비아는 5:5로 분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항복한 후 티토가 유고연방을 만들어버리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 소련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지요. 영국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티토가 약속하기를 공산주의 체제를 하지 않고 총선거를 할 것이라고 했는데, 티토가 약속을 깨고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설립한 것이었습니다. 소련 입장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보통 소련의 위성국가 역할을 하면서 스탈린의 지시를 잘 따르는데 티토는 이런 스탈린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노선을 선택한 거나 다름없으니 영국과 소련 둘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티토는 스탈린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리스 내전에 개입해서 공산당에 게릴라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또한 독자적으로 동유럽국가들과 교섭을 시도하는 등 스탈린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서 1948년 6월에 코민포름에서 유고연방이 영구 제명당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티토가 스탈린에 비협조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티토는 처음에는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도움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프로레타리아 전위 부대를 창설한 날짜가 스탈린 생일인 12월 21일로 맞추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지원 요청하는 티토를 스탈린이 외면합니다. 스탈린은 애초에 민족주의가 강한 유고슬라비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커지는 것 자체를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티토에게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죠.

 

 

 

2. 티토의 전략

티토는 매우 전략적이고 영리한 인물이었습니다. 스탈린과 티토의 사이가 안좋은 와중에도 티토는 대외적으로는 자신은 스탈린의 충복이라고 외치면서 스탈린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 거란 신호를 계속해서 보냅니다. 1944년 2차대전 말기에 소련이 독일을 치고 들어가 발칸반도까지 진격해오는데, 이때 티토는 모스크바까지 건너가 스탈린을 만나서 유고내 작전은 본인이 맡겠으니 소련군은 괜히 들어와서 불필요한 희생을 볼 필요가 없다고 설득합니다.

 

이렇게 되면 독일군 항복시점에서 이렇게 되면 유고슬라비아가 전후에 영국과 소련 군대를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음으로써 전후 간섭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내 군대는 티토의 파르티잔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1945년 1월에 이르러서는  파르티잔의 병력이 약 80만 명에 이르게 되고 총 52개 사단, 222개 여단을 가지게 됩니다. 이 정도 규모면 거의 전후 자력 해방 수준이기 때문에 소련군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3. 연합군이 파르티잔을 인정하다

이쯤 되니까 연합군은 유고연방의 파르티잔 세력을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전 세계 어떤 저항세력도 인정하지 않았던 연합군이 티토의 유고연방 파르티잔은 인정해준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임시정부 광복군이 있었지만 연합군이 인정을 해주지 안해준 것과는 달리 연합군이 티토의 파르티잔은 인정해줍니다.

 

4. 유고연방이 가능했던 이유

티토는 유고슬라비아의 연방을 만들어 독자적인 노선을 취했는데, 이 분쟁이 끊이지 않는 발칸반도에서 유고 연방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티토의 역량

티토 본인의 가족 구성도 적절히 민족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어느 특정 민족의 대변자가 아니었고 본인 또한 그걸 표방하지 않았습니다. 즉 유고슬라비즘, 민족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입니다. 티토는 형제애를 강조하면서 통합을 외쳤고 이것이 티토의 전쟁영웅 이미지와 합쳐지면서 유고슬라비아 민족들을 설득했습니다.

2) 공산주의 체제

둘째, 티토의 유고연방이 공산주의 체제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세계에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는 매우 인기 있는 사회체제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체제 특성상 유고슬라비아 민족들의 고질적인 갈등의 문제였던 일시적으로나마 종교문제를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못살던 소련이 수십 년 만에 저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체제 때문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유고슬라비아 민족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약소국으로 오랜 기간 괴롭힘을 당했던 유고 민족들이 티토의 공산주의 체제하에 통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7편.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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