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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

고대 그리스 문명 2편

by 니루루 2022. 10. 7.

1. 폴리스의 형성

기운전 8세기에 이르면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에 폴리스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들이 나타났다. 암흑기 이전의 국가들이 왕국 체제를 유지했던 반면 폴리스는 시민들의 공동체 국가였다. 폴리스라는 말이 원래 '성채'라는 뜻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폴리스의 형성은 암흑기의 불안한 시대에 자신들의 재산과 토지를 지키려는 군사적 공동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군사적 요새가 발전하여 부근 주민들의 정치, 종교,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인근 해당지역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폴리스였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그 중심지에 해당하는 도시와 그 주변부의 농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몇몇 상업국가를 제외하고는 폴리스 도시 중심지의 경제적 역할은 미미한 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경제중심지는 농촌이었으며, 도시는 근대도시와 같은 생산도시라기보다 유한계층이 소일하는 소비도시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따라서 폴리스를 '도시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2. 폴리스의 특징


폴리스는 우선 소규모 국가였다. 대개 산악과 바다 등의 자연적 경계를 따라 국경이 이루어졌는데, 에게해의 수많은 섬들이 각기 하나의 폴리스를 이룰 정도여서 폴리스들의 총수는 적어도 500개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폴리스들은 그 면적이 우리나라 제주도의 면적의 3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였고, 시민수도 5천 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폴리스들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아주 예외적으로 큰 국가였다. 그렇더라도 아테네의 폴리스 규모는 제주도 면적의 9분의 8 정도였다.폴리스들은 규모는 작지만 각기 스스로 의사결정과 정책집행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국가였다. 그 폴리스의 국정을 책임지고 국가방위를 위해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이 바로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국정운영이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자기 부담을 해서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과 여가시간이 있어야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폴리스에서는 혈통과 재산에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유인들만이 시민 자격을 가지고 공동책임과 공동 수혜의 원칙 아래 함께 국정에 참여했던 것이다.

 

국가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요건의 내용과 기준에 따라 폴리스의 정체가 정해졌다. 물론 폴리스 일반에 적용되는 정체란 없었다. 민주제를 발전시킨 아테네인이 있었는가 하면 과두제를 채택한 스파르타 인도 있었다. 그 정체는 해당 폴리스 시민들의 고유한 사회구조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폴리스 체제에서는 과거 크레타 문명이나 미케네 문명에서 보이는 권위 있는 왕이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왕이 남아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형식적인 존재에 머물렀다. 국가의 행정을 주관하는 관리는 왕처럼 혈통에 의해 계승되지 않고 시민의 의사결정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유력 시민의 회의체나 시민 전체의 회합인 민회가 국가의 핵심적인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한마디로 폴리스는 자유시민들의 인적인 공동체였다.

 

그리스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폴리스적인 동물'이라는 규정을 내릴 만큼 폴리스와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살아왔다. 그들은 폴리스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체제로 수용하며, 그 속에서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일구어 나갔다.

3. 폴리스 귀족정의 붕괴



그리스 본토와 이오니아지방에 형성된 폴리스들은 기원전 8세기 후반부터 지중해 일대에 그리스인들의 식민 운동이 전개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식민 운동은 지중해 전역에 걸치다시피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저 멀리 스페인의 동부 해안에까지 이르렀다.

 

식민 운동으로 인해 지중해 전역에서는 전에 비해 교역이 촉진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주로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수출하고 그들의 토양조건에서는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곡물과 목재를 수입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그리스에서는 포도와 올리브를 생산하는 농민들 중에서 수출을 통해 많은 부를 획득한 부농이 등장하였고, 또한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담아 보낼 도자기를 만드는 도자기 산업 등을 중심으로 수공업도 차츰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부유층은 자신들의 부와 국가에 대한 공헌을 기반으로 귀족층의 정치독점에 도전하였다. 이들 귀족층의 정치권력이 붕괴해 가는 과정은 각 폴리스마다 다양했다. 그 과정에서 아테네인처럼 참주정을 겪은 폴리스도 있고, 스파르타인처럼 그렇지 않은 폴리스도 있었다. 

 

기원전 7세기 중엽에서 6세기 말 사이는 가히 참주의 시대라고 할 만큼 그리스도처에서 참주들이 등장했다. 물론 각 폴리스들의 참주 등장 배경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보건대 귀족정의 법제 하에서 합법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킬 수 없는 불만세력들이 비합법적인 무력 수단을 통해 장악하는 과정이 참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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