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사

인도의 고대문명 2편. 베다시대의 문화

by 니루루 2022. 9. 23.

 

1. 아리아인의 인도정착

기원전 1500년경부터 아리아인이 인도에 들어왔다. 이란을 거쳐 들어온 아리아인들은 인더스강 주변에 일시 정착했다.

유목민인 그들의 주산업은 목축이었고, 말과 마차를 이용해 이동생활을 하면서 청동제 무기로 토착민들을 정복하였다.

그들은 토착민들과 전쟁을 하고, 또 동화하면서 새로운 인도민족을 형성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리그 베다를 통해 당시 그들의 사회를 조명해 볼 수 있다. 리그베다는 인드라, 아그니, 바루나 등의 자연현상을 인 격화한 신들을 찬미한 노래 모음이다. 리그베다에 의하면 당시는 부족장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가지의 부족회의가 열렸던 부족사회였다. 이 시대에는 소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동쪽으로 이동하던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전 600년경 사이에 갠지스-야무나 두 강 사이의 대평원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2. 카스트 제도의 등장

철의 도입으로 점차 농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수립된 국가의 말기에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신분구조가 확립하였다. 이것을 카스트제도라고 하며, 이 가운데 브라만이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종교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자연현상이 인 격화된 신들은 퇴조되고, 브라마-시바-비슈누의 삼신 체계가 확립되었다. 또 제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져 막대한 축우의 손실을 가져왔다. 이 시대의 사회에 대하여는 시마 베다, 야주르 베다, 아타르 바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3. 기원전 6세기의 사회와 문화

기원전 6세기경 동북부지방에 철제 농기구가 도입되면서 농업이 크게 발달하고, 이를 기반으로 여러 곳에 도시가 발생하였다. 상업과 교역이 활발하고, 최초로 주화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1000년 만에 다시 도시문화가 번성하였다. 영토확장이 이루어지면서, 16개의 영역국가가 형성되었다. 영역 국가 가운데는 마가다, 코살라 같은 군주제 국가도 있었고, 릿차비같은 공화제 국가도 있었다. 이 가운데 마가다가 전 지역을 통일하였다. 마가다제국은 하리 안카 왕조, 시슈 나가 왕조, 난다 왕조로 이어진다.

 

이 시대에는 이전의 부족법체계가 네 개로 구분된 바르나를 기준으로 하는 사회법 체계로 대체되었다. 이는 브라만에게 모든 특권을 주고 수드라의 모든 권리를 박탈한 철저한 불평등법이었다. 기원전 6세기에는 기존의 브라만교를 반대하는 수많은 종교의 발생을 들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교와 자이나교였다. 그들은 새로이 형성된 농업경제 아래 엄청난 축우의 손실을 가져오는 브라만교의 제사주의에 반발하였다.

 

왕권의 강화와 상업의 발달로 크샤트리아와 바이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는데, 그들의 물질문화를 옹호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종교로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일어난 것이다. 이 두 종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붓다와 바르다마나 마하 비라가 크샤트리아 출신이고 상인들이 두 종교의 대표적인 후원자였음을 보아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모두 아트만 부인, 불살생, 무소유, 카스트제도 비판 등을 기본으로 삼았다. 특히 불교는 상가를 조직하여 수드라와 여자에게도 그 문호를 개방하는 등 자유롭고 민주적인 교단으로 발전시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