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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

서아시아 3편. 우마위야 왕조 (661~750)

by 니루루 2022. 9. 4.

이슬람사원

1. 우마위야

새 왕조의 과제는 분열되고 약화된 이슬람 제국을 강화시키는 일이었다. 따라서 역대 군주들은 종래의 이슬람 신정제를 탈피하여, 아랍 부족 중심의 세습적인 신분제에 바탕을 둔 중앙집권적 군주제를 채택하였다. 그러한 시도의 첫 번째로 제국의 중심을 메디나에서 비잔틴제국의 동부 수도였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겼다. 그리고 본격적인 정주화에 착수하여 수많은 요새와 건축물을 축조하였다.

 

2. 영토확장

우마위야 시대에 영토는 더욱 넓어져 동으로는 헤라트, 카불,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여 파미르공원을 경계로 당나라와 접경하게 되었고, 710년에는 오늘날 파키스탄의 모체가 된 신드주와 펀자브주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서로는 비잔틴제국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여, 비잔틴의 군소 속령을 차지하고 두 차례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도 하였다.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정복에도 관심을 기울여, 베르베르 족을 복속시킨 후, 711년 지롤터 해협을 건너 에스파냐의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을 멸하였다. 이로써 에스파냐는 15세기 말까지 이슬람 국가로 유럽에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는 창구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군은 여세를 몰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을 공략하였으나, 732년 샤를르 마르텔의 군대에 저지당함으로써 유럽 중심부의 이슬람화를 막았다.

 

3. 우마위야의 사회구조

모든 모슬렘들의 평등을 강조한 초기 이슬람 사회에서는 신분과 계급갈등이 미미하였다. 유목생활을 근간으로 하는 아랍지배자들은 정착적인 경작 생활보다는 군사적 정복자로서 비모 슬렘들인 피정복자로부터 인두세와 토지세를 징수하는 생활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아랍의 지배계층도 정복지가 증대되고 토지소유가 허용되면서 점차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개종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신분계층이 분화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런 비아랍계 개종자들을 마 왈리라 하는데, 그들은 아랍 지배세력보다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아랍인보다 훨씬 열등한 대우를 받았다. 마 왈리의 불만은 곧 쿠파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시아파 세력들과 결탁하여 우마위야 왕조의 강력한 위협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여기에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남부 아랍인들까지 가세하였다. 결국 페르시아의 호라산 일대에서 반란이 일어나 우마위야 왕조는 멸망하고, 야불 아바스에 의해 아바스 왕조가 새로운 이슬람의 옷을 걸치고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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