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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카타 카하라 전투 다케다 신겐을 추격해서 뒷덜미를 잡아야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전의 장소를 미카타카하라 고원을 택하는데요. 여기서 지나가는 다케다 신겐의 측면을 칠 계획을 세웁니다. 길이 좁았기 때문에 병력이 열세에 있어도 싸워볼만 하다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도쿠가와는 신겐의 측면에서 기습을 하려 하지만, 정찰병을 통해 이를 미리 눈치챈 다케다 신겐은 군대를 돌려서 도쿠가와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군을 하던 군대가 말머리를 돌려서 적을 기다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군대가 진격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리는 것은 현대 군도 일주일은 걸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겐 부대가 이토록 신속하게 움직여서 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군대가 얼마나 훈련이 잘된 군대인지 ..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아직 교토로 진군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줘야 하는데, 마침 쇼군의 동생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노부나가를 찾게 됩니다. 당시 쇼군이 암살당했기 때문인데, 동생인 요시아키가 노부나가에게 SOS를 치게 된 것이죠.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겠다는 명분으로 순식간에 교토를 장악,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고 맙니다.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각 도시의 미래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탁월한 식견이 있었고, 그는 사카이, 오쓰, 구사쓰 지역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당시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의 부탁이 너무 소소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그 세 지역을 요구한..
관동지방에서 대립하던 호조, 겐신과 신겐이 이처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이유는 교토로 가려는 다이묘들 사이의 경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왜 그렇게 서둘러 교토로 가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까요? 1. 교토에 가야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 전국시대 혼란기에 전국에서 센고쿠 다이묘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각 영지에 수입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교토에 있는 천황과 쇼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요. 이에 쇼군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천황이 굶주리고 계시니, 누군가 이 어지러운 교토를 정리해달라'면서 관동 지역의 다이묘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어서 너희들 중 누군가가 와서 힘으로 이 무질서한 교토를 관리하라는 명분이었습니다. 신겐이나 겐신과 같은 관동 다..
1.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라이벌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통의 후계자가 아니었고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겨내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전장에서 입증하며 리더로 성장했지요. 이렇게 비슷했던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각각 가이의 호랑이, 에치고의 용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용호상박의 최고의 무장들이었지만, 각기 가진 장점은 달랐습니다. 2.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은 매우 권모술수가 능하고 유연한 전략가였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고, 비열한 술수를 쓰는 것에도 능숙한 인물이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전국시대를 통일하여 쇼군에 오른 직후에 ..
1. 일본 전국시대의 기간 일본 전국시대의 기간은 1467년 오닌의 난에서부터 무로마치 막부가 끝날 때까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로마치 막부가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 집권 이후라는 설도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 이후라고 보는 학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야기로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쓰 막부의 설립까지는 가야 이 전국시대가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 오닌의 난 가마쿠라 막부가 끝나고 무로마치 막부가 시작되는데,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으로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있었습니다. 쇼군 요시마사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권력에 별 관심이 없는 한량이었는데 반해 그의 부인인 히노 도미코는 유달리 돈 욕심이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도미코의 집안이 막대한 ..
이번 포스팅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리즈 10 회편으로 보스니아 전쟁과 인종청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학살과 약탈 유고연방군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포격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금 목표를 바꿔서 크로아티아 내 유고연방군기지를 크로아티아군이 포위한 것을 풀 것을 요구하면서 부코바르를 총공격합니다. 부코바르에는 압도적인 유고연방군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투지만은 주민의 희생을 피하려면 주민을 대피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대통령인 프라뇨 투지만은 매우 강경했고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주민의 희생을 여론전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때문에 세르비아계 민병대를 중심으로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세르비아 민병대의 잔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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