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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부리 시대와 라타나코신 왕조 타이는 1767년 미얀마의 싱뷰싱 왕의 공격으로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한 후 화교 탁신에 의해 톤부리 시대가 열렸으나 15년 만에 멸망하고, 차크리에 의해 라타나코신 왕조가 세워지면서 유럽 열강의 끊임없는 통상조약 요구를 받게 되었다. 라마 2세 말년인 1822년 영령 인도에서 크로퍼드를 파견하여 통상체결을 요구하였으나 포올콘 사건 이래 서양 제국에 대한 두려움에서 거절되었다. 이러한 통상의 요구는 거절하면서도 역대 왕들의 영토확장정책은 결실을 맺어 일부 라오스지역, 캄보디아의 시엠리아프, 바탐방, 말레이시아의 케다, 펄릿, 케란탄, 프랑가누 지방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버니 조약 그러나 타이는 라마 3세 때인 1826년 영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버니 조약을 체결하고, 1833..
1. 인더스 문명의 등장 인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만 변경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인들은 찍개나 손도끼 등의 구석기를 사용하며 주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였다. 그 후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목축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금석 병용의 문화가 발생하고,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청동기 도시 문명이 발달하였다. 1921년 현재의 파키스탄 하라파에서 처음 발견되어 하라파 문명 또는 인더스 문명이라고 불리는 이 문명은 인도아대륙의 서북부에서 일어났다. 이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도시문화라는 점이고, 대표적인 도시로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를 들 수 있다. 전체가 바둑판식으로 배열되는 등 매우 정교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들의 대부분은 욕실과 우물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하수구와 연결되어 있다. ..
로마의 지중해 팽창 로마인이 지중해 세계로 팽창을 시작하면서 마주친 첫 상대는 카르타고인이었다. 당시 카르타고 인들은 이탈리아 반도 주변의 코르시카, 사르디니아, 시칠리아 섬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할 만큼 서부 지중해 제일의 강력한 해상국가였다. 이 카르타고인과 로마인이 서부 지중해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 바로 포에니(Phoeni) 전쟁이었다. 포에니 전쟁은 세 차례에 걸쳐 벌어졌는데, 제1차 전쟁 (B.C. 264-241)은 로마인의 승리였다. 로마인은 카르타고인으로부터 맺은 시칠리아를 로마의 속주(provincia)로 편입시켰다. 속주는 자치권이 없이 로마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 로마에 대해 세금을 바쳐야 했다. 이탈리아 반도 통일과정에서 보여준 로마의 관대한 정책과는 대조적인 로마의 이 직..
로마 공화정의 발전 로마인이 지중해로 진출하여 그리스 문화와 본격적인 접촉을 갖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 중엽이었지만, 그들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라틴(Latin)인, 움브리아(Umbria)인, 삼니움(Samnium)인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1000년경에는 에트루리아(Etruria) 인이 이주해 살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에는 그리스인의 식민운동으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섬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했다. 그리고 기원전 8세기에 일부 라틴인들이 티베르강 유역에 조그만 촌락 공동체를 세웠는데, 그것이 대로 마제 국의 시초였다. 초기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의 문물을 많이 수용했다. 특히 에트루리아인은 ..
폴리스의 쇠퇴와 헬레니즘 세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이후의 그리스는 전반적으로 폴리스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 소모적인 전쟁들 속에서 폴리스들은 각기 그 국력이 현저하게 감소하여 이제 그리스인을 주도할 만한 중심국가도 없어졌다. 폴리스의 쇠퇴 현상은 폴리스 내부에서도 생겨났다. 기원전 4세기에 들어와 심화된 빈부격차는 시민단 내의 감속력을 약화시키고 시민들의 분열을 초래했다. 폴리스는 본래 시민들의 공동체인 만큼 시민들의 분열은 곧 폴리스의 국력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제 그리스인 자신의 문제에 관해서도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 인접 강대국들의 간섭을 초래했다. 그 강대국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이었다. 특히 그리스인의 문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