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칸반도의 민족적 갈등
발칸반도의 순수 지형적 측면에서 살펴봅시다. 발칸반도의 지형적 측면을 보면 이탈리아나 이베리아 반도의 경우 산맥이 횡적으로 솟아 있어서 지형 자체가 외세 침입을 방지하는 지형인데 비해 발칸반도는 산맥이 종적으로 솟아 있어서 외부세력들의 출입이 쉬운 지형입니다. 거기에다가 외세 침입은 쉽지만 내부 민족 간 교류는 어려운 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2. 발칸반도의 분할통치
유고슬라비아가 한 나라가 되었음에도 민족 간에 갈등이 심했던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외에도 분할통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분할통치라는 것은 제국이 민족을 통치할 때 민족 감정과 종교로 내부 다툼을 조장해서 단결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악화된 민족감정은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도 민족 간의 보복 감정으로 남아 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우리 세계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유고 내전도 같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요.
3. 발칸반도의 인구구성적 요소
유고슬라비아 민족들의 오래된 갈등은 발칸반도의 인구구성적 요소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세르비아 왕국이 14세기 중반까지 발칸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는 등 전성기를 맞습니다. 심지어 동로마제국과도 대립을 할 정도로 강성해집니다. 그러다 1389년에 오스만 제국과 코소보 전투를 벌이게 되고 여기서 세르비아군이 전멸을 당하고 500년간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알바니아계 무슬림들이 코소보로 대거 이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르비아인들은 이 역사를 매우 치욕적으로 여기고 코소보 지역을 되찾아야 할 성지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던 1912년에 세르비아 등 4개국은 발칸 동맹을 결성하여 오스만 제국과 다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는 거지요. 여기서 오스만제국 군대가 격파당합니다. 발칸반도 동맹은 그리하여 코소보를 다시 탈환하게 되는데, 이게 후에 큰 갈등의 요소로 남게 됩니다. 왜냐면 코소보를 탈환하면서 타민족들의 유입으로 다시금 혼란도 가중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민족의 인구구성이 복잡하다는 것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정치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특히나 보스니아의 경우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의 인구구성이 복잡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가 독립하려고 할 때 독립이 안된 이유는 북아일랜드에 이주민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북아일랜드 인구 중 아일랜드인이 30%에 불과했으니까요. 따라서 이런 경우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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