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 이란에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사파비 왕조가 세워져 페르시아어를 바탕으로 이란의 전통문화 회복에 기여하였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왕 때 전성기를 맞아, 오스만 제국의 여러 제도를 도입하여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문화와 경제분야에서도 수준 높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시 수도 이스파한은 훌륭한 건축물과 우아한 장식물로 아름답게 꾸며져 오늘날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사파비 왕조가 주변 민족들의 침입으로 약화된 후, 이란 지방은 18세기 말 카자르 왕조에 의해 재통 일되었다.
1. 카자르 왕조의 근대화
카자르 왕조는 한때 아프가니스탄까지 그 영역을 넓혀 번영하였으나, 19세기 말부터는 열강의 간섭과 침략이 가속화되었다. 따라서 이란의 근대화 과정도 유럽 열강에 대항하는 항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1890년에는 담배의 전매권이 영국의 수중에 넘어가자 담배 보이콧 운동이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기도 했으나, 결국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카프카스 지방을 점령하고 남과 북에 각각 자국의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이에 자극받은 국왕 알딘 샤는 1906년 헌법 제정과 의회 설립을 통한 입헌 혁명을 이룩하고 근대화를 추진했으나,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예속성이 심해지면서 효과적인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저항은 1911년 러시아의 무력간섭으로 좌절되고, 입헌 혁명운동을 끝이 났다.
2. 와하비 운동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있던 아랍세계에서는 18세기 중엽 이슬람의 고장인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자주를 표방한 민족운동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 와하 비운 동인데, 원래는 이슬람교의 변질과 개혁주의에 반대하여 코란의 순수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열정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오스만의 지배에 저항하는 사우드 가문의 호응을 받아 와하비 왕국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와하 비운동은 아랍인의 각성을 촉구하여 후일 아랍 여러 나라의 독립에 정신적 바탕을 제공해 주었다.
3. 이집트 마호메트 알리의 자치독립
한편, 이집트에는 투르크인 총독 아래 맘루크 토후로 대표되는 토착 봉건 세력이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18세기 말 나폴레옹의 원정으로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 자각이 촉진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이집트의 근대화를 추진시킨 이는 총독 마호메트 알리였다. 그는 아라비아로 출병하고 수단을 정복한 한편 이집트의 근대화를 위해 나일강을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다. 나아가 강력한 유럽식 군대의 창설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반독립적인 왕조를 건설하였다. 그 후 이스마일이 통치할 때는 수에즈 운하를 완공하고, 산업, 교통, 교육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나친 재정지출은 경제를 파탄시켜 수에즈 운하의 실권이 영국으로 이관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영국은 이집트에서 반유럽, 반 오스만 분위기가 고조되자 단독 출병하여 이집트를 점령해 버렸다.
4. 열강들의 영토 잠식
이처럼 영국이 1882년 키프로스에 이어 이집트를 점령하고, 1890년에는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세력권에 넣자, 경쟁관계에 있던 프랑스도 튀니지, 소말리아, 모로코를 연달아 보호국 화하였다. 이와 같은 열강의 지배에 맞서 서아시아 여러 나라는 이슬람교의 부흥, 아랍민족주의, 서양문물의 도입 등을 통해 근대화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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