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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 문학 그리스인의 문화가 서양문화의 원류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우선 문학과 철학을 들 수 있다. 문학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의 낭송 시인 호메로스가 구전가요를 정리해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가 서양문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극문학(劇文學)이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국가제전을 거행하고 매년 연극 경연을 실시한 이후부터였다. 비극은 대개 신화나 전설상의 소재를 이용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가치관과 심리를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비극시인은 아이스킬로스(B.C. 525~456), 소포클레스 (B.C. 496~406), 에우리피데스 (B.C. 485~406)였다. 아리스토파네스(B.C. 450~380?) 같은 희극 시인은 당시의 구체적인 현안문제들을 풍자하는 작..
1. 아테네 민주정 발전의 배경 한편 아테네 인들은 보다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아테네 인들도 초기에는 상류 가문의 대지주인 귀족들만이 폴리스의 국정에 참여하는 귀족정이었다. 당시 그리스의 전투방식은 기병 중심의 전술이어서 말을 사육하고 전차 등의 값비싼 전투장비를 스스로 구비할 수 있는 토지 귀족층이 국가의 방위를 전담하던 상황이었다. 귀족들은 명문가문으로서의 부와 위세, 그리고 국가에 대한 군사적 공헌을 바탕으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귀족세력의 정치독점에 대한 도전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면 우선 식민 운동 이후 부쩍 활발해진 교역활동과 수공업 생산에 힘입어 부유한 농민과 상인, 수공업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군사전술상의 변화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폴리스들이었다. 스파르타인은 정복자인 도리아인의 국가로서 선주민을 예속시켜 강압적으로 지배한 전형적인 군국주의 국가였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스파르타인은 초기의 귀족제에서 민주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과두제 체제를 굳혔다. 한편, 아테네인들은 이오니아 인들의 국가로서 민주제를 발전시킨 대표적인 국가였다. 스파르타인은 육군 국가여서 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의 내륙지방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아테네인은 해상국가로서 에게해 연안의 국가들과 섬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스파르타인의 사회 스파르타인은 정복국가로서 소수의 자유시민들이 다수의 피정복민을 무력으로 지배한 군국주의자였다. 그래서 국가우녕의 절대적인 목표는 다수의 피정복민을 통제할 수 있는 훌..
1. 폴리스의 형성 기운전 8세기에 이르면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에 폴리스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들이 나타났다. 암흑기 이전의 국가들이 왕국 체제를 유지했던 반면 폴리스는 시민들의 공동체 국가였다. 폴리스라는 말이 원래 '성채'라는 뜻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폴리스의 형성은 암흑기의 불안한 시대에 자신들의 재산과 토지를 지키려는 군사적 공동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군사적 요새가 발전하여 부근 주민들의 정치, 종교,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인근 해당지역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폴리스였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그 중심지에 해당하는 도시와 그 주변부의 농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몇몇 상업국가를 제외하고는 폴리스 도시 중심지의 경제적 역할은 미미한 편이..
크레타 문명 고대 서양의 문명은 지중해에 자리 잡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지중해 지역에서 최초의 고대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은 그리스인이 아니라, 에게해 남쪽에 살던 크레타인들이었다. 이들이 기원전 3000년경에 이룩한 지중해 최초의 청동기문명이 크레타 문명이었다. 크레타 문명의 유적을 발굴한 공로자는 영국인 고고학자 에반스였는데, 그는 1900년에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터를 발굴했다. 당시 크레타는 한 명의 강력한 왕에 의해 통치되는 통일왕국이 아니고, 여러 왕들이 각기 자신의 영역을 분할통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크레타는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및 그리스 본토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에 교역과 수공업의 번성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크레타 문명의 전성기는 기원전 2000..